
우리나라는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지방자치를 시행하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했다.
중앙집권적 방식으로는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치안, 복지, 행정 서비스 제공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권한과 책임을 합리적으로 분담하고, 주민들이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기회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취지와 달리 1995년 기초단체장 선거부터 도입된 정당공천제는 2006년 기초의원 선거에까지 확대되며 지방자치의 본래 목적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정당공천제는 지방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정당이 선택해 공천함으로써 후보자를 검증하고 지방자치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부작용이 나타났고, 특정 정당의 공천을 받아야만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지역정치가 중앙당의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일이 빈번해졌다.
이로 인해 지역의 핵심 현안조차 주민들의 의견보다는 중앙당의 방침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지방자치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중앙정부의 정책 결정과 집행권을 분산해 각 지자체의 자생력과 자립도를 높이는 것임을 고려할 때 정당공천제는 오히려 지방자치의 근간을 흔드는 제도로 변질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방자치는 국가로부터 독립된 법적 지위를 가지며, 지역 내의 현안을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주민 의사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자율성과 책임성을 바탕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정당공천제는 지방자치의 본질적 기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당공천제가 지방정치에도 불필요한 갈등과 대립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정당 간 정치적 대립이 지방정치로까지 확산하면서 협력보다는 반목이 지속되고 지역 현안이 해결되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지역발전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기초단체장과 의원들이 정당 간 대립에 휘말리면서 주민을 위한 실질적 정책 추진이 지연되는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정당공천제 폐지를 지지하는 의견이 8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국민이 지방자치 본연의 역할을 되찾고자 한다는 뜻이며, 정치권은 이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지방자치는 주민을 위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유권자들도 정당이 아닌 후보자의 정책과 역량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당이 아닌 지역주민의 선택을 받은 참된 일꾼들이 지방정치를 이끌 수 있다.
3월의 따스한 봄기운이 느껴진다. 지방정치에도 변화의 봄이 찾아와 주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정읍시의회 이복형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