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야의 문화사학자이면서 도보여행 문화유적답사가인 우리땅걷기모임의 신정일(71) 이사장이 새로운 책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군산'(신아출판사·2만 원)을 펴냈다.
신정일 이사장은 이 책에서 군산을 전북의 서쪽에 위치해 금강과 만경강이라는 두 큰 강 사이에서 발달한 도시로, 그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특별한 장소라고 소개한다.
군산의 기원은 조선 시대의 작은 마을 군산포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는 당시 군현이었던 옥구와 임피 고을의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작은 마을이 오늘날의 군산으로 성장하게 된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이야기다.
군산을 흐르는 금강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나간 역사와 지금의 현재가 충돌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있는 군산 지역을 흐르는 강이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 묘사된 금강은 그 아름다움과 힘을 잘 보여준다. 그는 금강의 물줄기를 따라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면 그 모습이 얼마나 흥미로운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저 준험한 소백산맥이 제주도를 건너보고 뜀을 뛸 듯이, 전라도의 뒷덜미를 급하게 달리다가 우뚝… 높이 솟구친 갈재(노령)와 지리산의 산협 물을 받아 가지고 장수로 진안으로 무주로 이렇게 역류하는 게 금강의 남쪽 줄기다. 그놈이 영동 근처에서 다시 추풍령과 속리산의 물까지 받으면서 서북으로 좌향을 돌려 충청 좌우도의 접경을 흘러간다…. 부여를 한바퀴 휙 돌려다 가는 남으로 꺽여 놀뫼(논산) 강경에까지 들이 닫는다.”
채만식이 '탁류'에서 묘사한 금강이 강경을 지나 전라도의 익산 땅으로 접어들어서 성당창과 웅포를 지나 나포에 이른다. 비단강이라고 이름 지은 금강은 다섯 성인의 자취가 남은 오성산과 한산 모시의 고장 서천 사이에 가로놓인 금강 하구둑에서 강으로서의 생애를 마무리 하고 서해로 들어간다.
만경강은 완주에서 시작되어 군산과 김제 사이를 가로지르며 서해로 나아간다. 이 강 역시 군산의 역사와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군산은 먼 옛날 백제의 땅이었으나, 신라에 병합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견훤이 후백제를 세우면서 새롭게 용트림 했다가 다시 고려의 왕건에게 합병됐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 이전, 고려 말에 군산의 하구인 진포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최무선의 진포대첩의 현장이 군산이고, 이 싸움은 이성계가 왜구를 크게 무찌른 황산대첩의 실마리가 됐다.
군산은 조선 후기인 1989년 일곱 번째로 개항되었으며, 일제에 의한 쌀 수탈의 현장이 됐다. 1909년 조선통독부의 전신인 조선통감부의 조사에 의하면 군산항의 전체 수출액 가운데 95%가 쌀이었다.
개항 이후 군산은 놀랍토록 변모했지만, 정작 군산 사람들의 삶은 비참했다. 채만식은 이를 소설에서 생생하게 묘사했다.
“급하게 경사진 언덕 비탈에 게딱지 같은 초가집이며 낡은 생철 집 오막살이들이 손바닥만한 빈틈도 남기지 않고 콩나물 길 듯 다닥다닥 주어 박혀 언덕이거니 짐작이나 할 뿐이다. 이러한 몇 곳이 군산의 인구 칠만 명 가운데 육만 명도 넘는 조선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어깨를 비비면서 옴다옴닥 모여 사는 곳이다. 대체 이 조그만 군산 바닥이 이러한 바이면 조선 전체는 어떠한 곳인고, 이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의 승재는 기가 탁 질렸다.”
당시 군산의 인구 7만 명 가운데 1만 명의 일본인들이 군산의 중심가에 살았고, 조선인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겨우겨우 살고 있었다. 해방 이후 한국 전쟁을 거쳤음에도 군산은 별로 변하지 않아서 1970년 말까지도 두 집 건너 한 집이 일본식 가옥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고스란히 남은 일제강점기의 흔적들은 오늘날 군산 관광의 한 축이 되었다.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군산의 역사와 문화는 그 자체로 많은 비밀을 품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궁금해진다.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몰고 온 신정일 이사장은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도 '길 위의 인문학'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한국 10대 강 도보답사를 기획하여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걸었다. 우리나라 옛 길인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 등을 도보로 답사했으며, 400여 곳의 산에 올랐다.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동해 바닷길을 걸은 후 문화체육관광부에 최장거리 도보답사 길을 제안하여 ‘해파랑길’을 개척한 장본인이다.
2010년 9월에는 관광의 날을 맞아 소백산자락길, 변산마실길, 전주 천년고도 옛길 등을 만든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독학으로 문학·고전·역사·철학 등을 섭렵한 독서광이기도 한 그는 수십여 년간 우리 땅 구석구석을 걸어온 이력과 방대한 독서량을 무기로 '길 위에서 배운 것들', '길에서 만나는 인문학', '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 '대한민국에서 살기 좋은 곳 33', '섬진강 따라 걷기',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 고을을 가다'(전3권), '낙동강', '신정일의 한강역사문화탐사', '영남대로', '삼남대로', '관동대로' 등 100여 권의 책을 출간했다.